바빴던 주말

하린과 다복이 합세한 뒤로 집안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휙휙 지나간다.

지난 주말만 살펴 봐도,

다복이와 탁구를 함께 친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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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라 다복과의 대결에서 내가 이겼다, 하하)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시피 한 곳에서 3일간의 단기 알바를 하게 된 열혈 청년 하린을 픽업하거나 바래다주는 서비스도 해야 했고

 

(가는 길에 아름다운 노을도 보고 우리끼리는 생전 안 가보던 미술관 가을 풍경도 감상도 해서 나름 좋았음)

 

사라다 샌드위치, 연어구이와 샐러드, 미스터 피자, 삼겹살 등으로 집에서 거의 모든 끼니를 함께 했다. (사진엔 없지만 골뱅이 무침도 해먹었음. 다복이에겐 무리겠지 했는데, 웬걸. 우리도 맵다 싶은 양념인데 꿀떡꿀떡 잘 먹어서 깜놀, 뭐든지 주는 대로 너무나 잘 먹는 이 분께서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채식주의자였다니 ㅎㅎ 믿기지가 않아서 매번 놀리는 재미, 꾸르잼)

이외에도 두 집 살림을 하기에 적절한 임대 건이 제주맘 카페에 올라왔길래, 다복이랑 다 같이 가보기도 하고 (다복이는 영국에 비하면 너무 싸니까 무조건 띵호와 ㅋㅋ , 하린은 다세대 주택에 사는 자체를 탐탁치 않아 해서 보지도 않고 약간 반대, 하지만…아직도 우리는 동네를 못 정하는 관계로, 집 주인께는 좀 죄송하지만 현재로서는 구경만 잘 한 셈)

하린이 알바한 돈으로 모니터를 중고로 구매, 건과 나는 그 접선 및 물건 이송을 위해 차량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음.

이래저래 하린이가 운전대를 잡을 일이 많겠다 싶어 오늘 아침에 회사 오자마자 자동차보험 조건부터 변경, 차량 서비스 제공은 이제 우리가 받는 쪽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훗.

그리고 이런저런 자잘한 계획들이 있는데, 그가운데 새로운 계획은 서핑. 하린이 제주 바다 서핑은 여름보다 가을이 제 맛이라 이맘 때를 놓치지 않고 하는 게 좋다고 어디서 들은 모양. 둘이서 곧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생전 가야 관심 없던 정보를 알게 되네. 🙂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떡볶이 먹고싶다고 어제 주문해 놨는데…둘이 요새  ‘문명’이라는 게임에 홀라당 빠져 있어서….과연 해주실랑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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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이고 모처럼 혼자 하루종일 사무실을 독차지하게 된 날. 이런 날은 딱히 쓸 일기 거리가 없어도 블로그의 새글 쓰기 창을 열게 된다.

몇 몇 방해꾼들이 왔다갔다 했지만 4시가 넘으니 그들 또한 어디론가 사라졌다. 만세! 이제야말로 혼자 놀기의 진수가 시작되는군.

오전에는 트이타에 쌓여만 가던 ‘마음에 들어요’ 통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 매년 안 버리면서도 매년 입지 않는 옷과 같은 멘션은 과감히 지우고, 아직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볼 것들’은 그대로 남기고, 친한 지인들과의 추억이 서린 트윗들을 제외한 대화하다 찍은 하트도 과감히 지우고, 웹툰 류는 첫 화를 본 다음 더 볼지 말지를 결정해서 지우고, 음악들은 애플뮤직에서 다운로드 해놓은 다음 지우고, 도서류는 알라딘에서 검색 후 더 읽고 싶어지면 보관함에 넣은 다음 지우고 – 노동요로 쳇베이커, 바흐 & 굴드, 쇼팽을 듣는 오후. 좋구나 좋아. 막판 퇴근 전에 급히 처리할 일이 생기지만 않으면 된다.

*

기대 반 약간의 걱정 반이었던 4인 공동생활은 현재까지 매우 만족스럽다. 그래 봐야 며칠 안되니 속단하긴 이르지만. ^-^;

아이들이 화요일에 전국 일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지난 한 달 여 하린 친구 D가 지낸 나날을 같이 앉아 돌이켜보니 이래저래 참 럭키 가이구나 싶어서 건이 한국 이름을 다복이라고 지어줌. 다복이 덕분에 복이 우리집 안으로도 굴러들어왔나, 자잘한 일상사가 무리됨이나 어긋남 없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하린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면서 같이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하나 하나 해서 먹이는 기쁨에 도취되는 한편, 건은 회식을 하고 와도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게끔 술을 적당히 마시는 자제력을 발휘한 스스로를 뿌듯해하고, 하린은 긴장을 안하고 끼니를 잘 챙기니 장이 편안해졌는지 똥을 잘 싼다. 다복이는 처음보다 낯가림이 덜해졌지만 워낙 말이 없는 편이고 (주로 듣는다) 몸가짐이 조신해서 전체 구성원이 두배나 늘었는데도 집이 너무 북적거린단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둘일 때보다 약간의 활기가 더해지고 일상에도 탄력이 넘치는 느낌. 모두가 한마음으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일센티만 차이가 나도 미묘하게 틀어지는 적정 거리를 긴장감있게 유지하기 때문이리라.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지금 집에서 계속 넷이 함께 살기란  아이들에겐 아무래도 불편하겠지 싶어서 하린의 근무지 발령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발령이 나야 이사할 동네와 구조도 결정될 것이라.

명란파스타와 치킨샐러드, 떡국과 녹두전, 김밥과 미소국, 이 정도만 했는데도 꼬박 이틀 동안 앞치마 벗을 시간 거의 없이 분주했다. 하루 세끼를 한 상 그득 차려내시는 분들, 매우 존경. 예전에도 존경했지만 지금은 더욱 존경. 재능과 체력 둘다를 겸비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요 정도 수준 이상으론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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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은 건과 내가 둘다 일을 하는 날이면 미리 말하지 않아도 곧잘 본인이 저녁을 준비한다. 가끔씩 신경이 날카로울 때면 툴툴거리긴 해도 기본적으로 자상한 구석이 있는 녀석. 어제는 특기인 바지락 파스타를 뚝딱 만들어줬다. 떡볶이는 주말에 해달래야지.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으니 한동안은 좀 쉰다더니 하린은 그새를 못참고 오늘 아침부터 알바하러 갔다. 다복이가 한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종일 혼자 집에 있게 된 것! 모르긴 몰라도 오늘 사무실을 독차지한 나만큼이나 흐뭇하게 딩굴대고 있을 테지. ㅎㅎ

지난 주

태풍 콩레이 때문에 4일부터 파란이 일기 시작, 마침 출장 왔던 외국인 상사가 제주를 빠져나가지 못한지라 약간 급하게 스케줄 조정해야 했던 일 빼고는 내 주변엔 딱히 피해가 없었으나…매 해 마음 졸이는 순간이 꼭 두 세번은 있다 보니 섬에 산다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또 한번 느꼈다. 제주도 티켓 끊어두고 기상 예보 한 번 들춰 보지 않고 룰루랄라 공항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강심장을 지닌 분들 여전히 많은데…그러한 무지가 차라리 부럽달까. 난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아무리 제주라 해도 차 없이도 어찌 어찌 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 또 오산인 게 바로 이런 날씨 때문이기도 하다. 평균을 내보자면 한 해 약 열흘 안팎이려나, 많은 날들은 아닌데 딱 내 차 또는 집 차 없으면 남에게 폐 끼쳐야 하는 상황이 온다. 지난 금요일에도 내 경우엔 건이 데리러 와서 괜찮았지만 사무실 동료 2인은 보쓰가 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차를 태워달라고 해야 했다. 미친 비바람을 뚫고 십여분을 걷는다는 것이 불가능한데 택시를 불러도 이럴 땐 절대 안 오기 때무네…역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길가로 나가서 택시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육짓분들의 강심장이 부럽다. 난 이제 돌이킬 수 없어….서, 태풍 시작되자마자 공항 가는데 택시 잡겠다는 사람 겨우 말려서 회사 차 어레인지 해주고서야 직성 풀렸다. 휴 – 오지랖 좀 그만 부려야 되는데 멈추질 못해. ㅠ

외에는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

가래떡을 간만에 사먹으니까 세상에 – 너무 맛있다. 그냥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고, 아마 떡볶이 해먹어도 맛있을 예정. (하린이 오면 해달라 하려고 냉동실에 몇 개 남겨둠, 으흐)

건이 잉글리쉬브랙퍼스트 드시고 싶댔는데, 제주에는 딱 그맛을 내줄 소시지가 없어서 어메리칸으로 대체. 요리라는 게 자주 하면 이래저래 느나 보다. 전에 내가 한 스크램블 에그는 늘 퍽퍽하고 맛이 없었는데 이번엔 몽글하니 잘됐다. 불 조절이 중요한 모양인데 하다 보니 그냥 감이 잡혀졌나 봄. ^-V

제육볶음은 내가 별로 안 먹고 싶어하는 메뉴라 (구내식당에서 자주 나와서 질린 듯) 거의 안해먹었는데 건이 너무 먹고파 한 지 꽤 되어서 드디어 먹긴 했는데….힝, 밤에 배 아팠다. 하도 자극적인 걸 잘 안 먹고 살아서 이렇게 된 건지, 늙어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런 음식을 전날 먹고 다음날 출근하는 게 점점 부담스러움. 맛은 있었는데, 힝.

*

홈랜드는 시즌 3까지만 보고 안 보기로. 데미안루이스의 호연 때문에 참고 본 내용이 많았는데 아니 이 분이 시즌 3까지 밖에 안 나와 ㅠㅠ (시작한 지 오래된 미드라 이미 볼 분은 다 봤겠지만 혹시 안 본 분들 있을까 봐 스포는 여기까지만) 극 비호감 캐릭터인 캐리 혼자 이 극을 캐리해갈 것을 떠올리니 영 내키지 않아서. 왕겜은 끝까지 봐냈던 경험과 비교하자면, 역시 우리는 일 중독자를 권력 중독자보다 더 싫어하거나 더 관심없어 하는 듯? ㅎㅎ 아니 어쩌면 넘나 미쿡적인 관점이 도드라져서 별로인가? 어쨌든 이제 하오카 나올 때까지는 시리즈 안 보고 그냥 다큐나 봐야겄다. 넷플릭스는 요즘 드라마보다 다큐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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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레슨을 이제 2회 받았고 어제는 레슨이 없는데도 연습하러 갔다.

첫날은 아무 말씀 없었던 슨상님께서 2회차 그나마 조금 나아지니 하는 말, “어휴 나아져서 다행이에요.  저번에는 저렇게 자세가 안 나와서 앞으로 어쩌지, 막막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슨상님 지송함미다. 제가 좀 많이 느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는 열심히 할 생각이 없다. 원래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격이 못되는데 스포츠는 더더욱 매진하지 않는 성격이라. 하하하. 반면 레슨이 거의 필요없을 만큼 이미 잘 치시는 우리 건님께서는 나보다 더 열심이라 이제는 막 내 눈엔 선수처럼 보임.

아직은 운동 한다고 어디다 말할 주제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거나마 주 2회나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하다. 오늘 그 핑계로 드라이 핏 어쩌고 나이키 운동복까지 사니까 더 뿌듯하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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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이 전국 일주를 마치고 내일 제주로 올 예정이다. 에헤헤, 좋아라.

 

 

10월 좋아

올해는 추석이 9월말에 있었는데 바로 이어 3일과 9일 매주 쉬는 날이 있으니까 더 좋은 것 같다. 8월까지 은근히 치솟았던 짜증이 9월 중순부터 서서히 내려 앉고 이번 주에는 완전 거의 사라짐. 흐 – 하지만 중순부터는 11월 달력을 보며 한숨 쉬고 있겠지. 참 단순하기도 하다만, 이런 단순함이 나는 너무 좋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 빨간 날을 기다리며 일상을 사는 것, 이만한 행복이 세상 천지에 없음. 우주가 나를 돕는다면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다 가고 싶음.

지난 주말에도 이 무드로 눈누난나 평화롭게 맛난 것들 먹고 홈랜드 보면서 쉬고 청소/빨래도 하고 별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크다고 할 수 있는 일상의 변화가 있었으니! 기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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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 제안으로 탁구를 배우고 향후 둘이 함께 할 취미생활로 굳히자는 계획을 세웠다. 건은 이미 회사에서 점심시간마다 치고 있어서 동료에게 위 사진과 같은 선물까지 받았다 (탁구러들은 누가 탁구 친다고 하면 무조건 굉장히 반가워한다, 막 선물까지 사다 줄 정도로 열혈 지원 ㅎㅎㅎ 왤까).

사실 마음을 먹은 지는 한 달 가량 지났는데 괜찮은 탁구연습장을 물색한다 (동호회 위주도 싫고 주차가 어려운 곳도 싫고 너무 낡고 비좁은 곳도 싫고 등등 따질 게 은근 많았다), 하린과 친구가 온다, 추석 연휴에 논다 등등의 스케줄로 지난 일요일에서야 레슨비를 내고 다음 수요일부터 정식으로 시작하기로 결정! 나는 딱 2회를 연습 삼아 건과 쳐 봤는데 건이 막 탁구천재라며 치켜세운다. 진실이 1%에 불과한 칭찬이래도 칭찬은 무조건 받고 보는 것. 까불거리며 그날은 잘 놀고 잘 잤는데 어제 월요일 오후가 되자 팔꿈치 안쪽이 시큰시큰. 아유 얼마나 운동부족이 심했으면 고작 30분 그거 했다고 이러나 경각심이 와서, 이제라도 이렇게 시작하길 참 잘했다 싶다.

취미생활로 말하자면, 내 마음 같아서는 역시 동적인 운동보다는 피아노 배우기 같은 것이 옛날부터 하고 싶었으나…(어릴 때 체르니 40에서 멈춘 게 평생 한이 되어 있음 -_ㅠ) 이거야말로 회사 그만두고나서나 가능하지 싶고 제주에서 성인 수강이 가능한 학원이 있기나 할지도 좀 의문이라 밍기적대고 있다. 이 또한 우리 둘다 주 40시간 엄수하는 이 생활이니 궁리 가능하다 싶으니, 저녁이 있는 삶 만세! 현 정부가 다른 건 몰라도 노동시간 줄이는 정책 만큼은 뚝심있게 계속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 골뱅이 무침 너무 맛있어서 소름. 여기는 ‘어떤 요리들’ 카테고리는 아니지만 필요한 분들 보시라고 양념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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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뱅이는 아니더라도 골뱅이 자체의 품질이 좋으면 당연히 맛도 훨씬 좋으니 참고하시고, 나머지 채소는 취향껏 넣으시면 되겠으나 이번에 진미채 추가해보니 이게 아주 큰 역할을 합디다. 추릅. 아, 그리고 저는 골뱅이 통조림 내 국물도 양념에 두어 숟갈 추가해줬는데 그게 밖에서 파는 맛을 내주는 듯. 국물 넣기 찝찝해 하는 분이 아니라면 과감히 넣기를 추천.

가운데와 오른쪽 사진은 각기 건이 만든 칼국수와 탁구 치고 나와서 먹은 탕수육.

칼국수는 역시 참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맛있게 하는 것도 은근 어렵고. 이제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아서 쉽게 국수’나’ 말아먹자는 소리 덜 하지만 나 어릴 때만 해도 칼국수나 잔치국수 같은 것이 정말로 간단한 요리인 줄 알았으니, 참 다들 무지했도다. 이번엔 냉동실에 바지락이 있는데다 비가 부슬부슬 해서 급 동하니 집에서 해먹었지만 다음부턴 그냥 사묵자. (하지만 제주에서 맛있는 칼국수 집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게 또 함정)

깔끔하면서 맛도 괜찮은 중식당을 만나면 늘 반갑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만만하게 생각나는 음식이고 때 되면 반드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이라. 탁구 치고 나온 동네는 우리 동네에서 꽤 떨어진 곳이라 처음 시도해 본 중식당이었는데 맛이 좋아서 기분도 업. 좋은 주말이었다.

*

하린은 여전히 전국일주 중, 남쪽을 다 돌고 동쪽 강릉으로 갔다고 어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면 다시 제주에 복귀할 텐데….잠시라고는 하지만 다 큰 남자 2인이 쓰기에는 수납공간이 너무 부족해서 서랍장을 하나 들일까 어쩔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맞게 회사에서 재활용 가능하고 상태 출중한 (폐기 직전의) 서랍장 득템! 워낙 무겁고 사이즈도 커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영차영차 들여놓고 저녁에 고단해 하는 건을 도닥여 정리까지 해두니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역시 간절히 원하면 이뤄지는 것인가, 또 한 번 어딘가에, 누군가에 고마운 마음.

*

요새 공부가 좀 많이 게을러졌다. 다시 일어 앱도 매일 켜서 공부하고 책도 좀 열심히 읽을 것. 트위터에 잔뜩 담아둔 영자신문 기사도 좀 읽고! 학교 다닐 때처럼 일기에 각오를 써 본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더 안해 ㅠ)

 

새로운 일상의 서막

지난 17일에 하린이 친구 D를 데리고 제주로 왔다.

D는 제주에서 약 1년 정도 살기로 작정을 하고 왔기 때문에 앞으로 하린과 함께 지낼 공간을 마련할 예정. 하린의 근무지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우리집을 베이스로 두는 만큼 따로 또 같이, 우리 넷의 새로운 일상은 이날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두둥!

줄잡아 약 일주일 동안 아이들을 쾌적하게 맞이하고자 이런저런 준비를 했어서, (연차까지 낸) 당일에는 오로지 저녁 메뉴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덕분인지 음식이 대체로 잘 되었다. 채식을 하는 D를 위해 나물, 호박전, 비빔밥, 된장국을 준비, 하린을 위해서는 갈비찜을 준비했는데…하린 said, 한국 도착한 첫날도 갈비를 먹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서도 갈비를 먹었다고 -__-; 그래도 또! 맛있게 잘 먹어줘서 기뻤음. 그리고 앞으로 함께 식사를 자주 하게 될 D가 한식을 제법 잘 먹어서 다행. 채식주의만 아니라면 더 맛난 걸 많이 해줄 텐데 아쉽….다고 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급 마인드 변경, 며칠 지나지 않아 배달 치킨을 (맛나게) 드심. 하하하.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코리아 치맥의 위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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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고향 특산품, 멀리서부터 가져온 선물, 부쉬밀즈 위스키. 안그래도 술이라면 무조건 좋아라 하는 우리인데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브랜드라 더욱 고맙고 기뻤다. 적응력 캡이자 센스 만점 D군, 술과 함께 대 환영!

하린은 이제 비타민 한 통은 영국서 올 때면 우릴 위해 꼭 챙겨오는 게 습관이 되었나 보다. 잘 챙겨먹고 힘 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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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와 하린이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겨우 3일 후. 또 다른 멤버 A가 제주로 와서 합류하자마자 셋은 캠핑을 떠났다.

지난 일요일부터는 제주를 벗어나 전주로, 이후 계속 움직이는 중. 지금은 어디메쯤 있을까? 궁금하지만 섣불리 묻지는 않는다. 바람처럼 휙휙, 누구에게 보고할 의무 없이, 얼마 후면 2년 간 꽁꽁 묶일 테니 막판 이 자유를 만끽하라고, 그저 몸 건강히 별 탈 없이 잘 다녀오길, 건과 나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한편,

마침 추석 연휴 바로 전에 하린이 떠난지라 우리에게도 여유가(? ㅎㅎ) 생겼다. 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꽤 오랫동안 이래저래 못했던 수영을 하러 초창기에 한 번 가고 통 못 갔던 디아넥스 호텔 (작년 초였구나, 더 오래 된 줄 알았는데) 전격 방문! 간 김에 접영 연습을 시도했으나…으, 역시 접영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만 깨닫고 옴. 그래도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체력만 된다면 종일이라도 있고 싶었다.

수영하고나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바로 옆 포도호텔로 이동, 제주 처음 와서 먹은 지 무려 6년 만에 이 호텔의 시그니처인 새우 우동을 먹었다. 이 돈을 주고  꼴랑 이 정도 우동을!? 이라는 반응도 나올 법 한 맛과 구성이지만 레스토랑의 뷰와 근처 고즈넉하고 광활한 산책길까지 덤으로 제공받는다 생각하면 그리 어리석은 선택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구나 이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아무리 폰으로 이래저래 찍어 봐도 육안으로 보는 만큼의 찬란함이 담아지지 않을 정도. 가을은 역시 자연 속에서 최고의 빛을 발하는 계절, 짧아서 아쉽지만 매년 어김없이 오긴 오니 그래도 고마운 일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책도 읽고 티비도 보고 트위터도 하고 스마트폰도 하고 트위터도 하고 트위터도 하고 또 트위터도…ㅋㅋ 아무래도 실시간 뉴스부터 잡다한 정보를 늘 트위터로 얻는 편이어선지 시간만 나면 수시로 보게 되는 앱.

재핑을 아무리 해본들 티비는 기본적으로 워낙 프로그램이 빈약해서 (네네, 여느 명절과 마찬가지죠) 넷플릭스를 주로 끼고 지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삶을 그린 다큐 ‘코다’와 퀸시 존스의 삶을 그린 다큐 ‘퀸시 존스의 삶과 죽음’을 연이어 보고 (둘다 너무 좋았다! 엘리트 독야청청 vs. 밑바닥 인생역전, 극과 극 비교도 재미있었고), 연휴가 아닐 때는 왠지 한 화만 봐도 피로감을 느꼈던 미드 ‘홈랜드’ 진도를 죽죽 뽑아서 이제 시즌 2 막바지까지 왔다. 어우, 1에서는 너무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고 미쿡적이고….이걸 우리가 계속 보게 될까 싶었는데, 시즌 2에서 훅 빠져 버리고 있;;; 왕겜에서처럼 결국 마지막 시즌까지 보게 될 듯. 배우들의 연기가 저러다 죽지 싶을 정도 절박한 호연이라, 그 재미가 제일 크다.

류이치 사카모토도, 퀸시 존스도, 데미안루이스를 비롯한 홈랜드 배우들과 제작진도 모두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는 일중독자의 모습을 보여준지라, 어쩌다 보니 연휴에 일개미 구경을 실컷 한 셈. 계속 혀를 차며 봤다. ㅉㅉ 저러고 살고 싶냐 어이쿠 지 아니면 세상 망하는 것도 아닌데 뭘 저리 ㅉㅉ 이러면서 ㅎㅎ, 딱 5일 간의 배짱이 흉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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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일만의 일상 복귀인데 그래도 크게 힘들지 않다 싶은 건…동료 둘이 아직도 휴가 중이고 (내일도) 이틀만 참으면 또 주말이기에 가능한 느낌이리라. 쓰다 보니 점심시간,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짐 ~.

가을이 온다

저녁이면 벌써 창문을 닫기 바쁘다.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그런지 이불을 덮고 누워도 찬 기운이 제대로 가시지 않는다. 가을이 왔다. 이제는 너무 짧아서 애틋하기까지 한 계절, 충분히 만끽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급하다. 워 – 워 – 진정하자, 생각하다가도 내일 당장의 일도 모르지 않나, 지금주의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 말자 싶기도 하고. 마음이 좀 일렁일렁 하는 날들.

일교차가 커진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내 나이가 지긋해져서일까, 근래 들어 주변에 심혈관이나 심장 이상을 호소하거나, 몸이 갑자기 아파진 사람들이 많다.

회사 동료 가운데 내 나이 또래 호주인이 심장 질환이 악화되어 오늘 입원을 했고, 건의 친구 가운데에서도 급작스럽게 아팠다 최근 겨우 호전세로 접어든 분이 있고, 지난 주 서울에서 만난 S언니도 대상포진으로 여름 내내 고생을 했다고.

뿐인가, 오늘 아침에는 정혜신 박사와 함께 세월호 참사로 상처 받은 유족들을 위한 일을 많이 해왔던 이명수 님도 지난 5월 심정지가 올 정도로 갑작스러운 마비 증세를 일으켜 생사를 오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백 만년 만에 페북 보다) 알았다. 평소 담배, 술도 안하고 최근에는 딱히 스트레스랄 것도 없었는데 이런 증상이 60세에 온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유전적 요인이 클 것이라고.

그 일이 일어난 이후 부부와 세 자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새로 얻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다 느끼는지를 읽어내려가는데, 어쩐지 완전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언제 어느 때고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역시 사람의 명이란 결국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운명론자의 마음으로 조금 더 기울어진다.

지금 즐길 수 있는 한 즐겨야 하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해야 한다. 미루면 안 된다. 하지만…어떻게 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그 깜냥이 되려나, 저울질을 해보았던 아침. 괜스레 좀 숙연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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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하더라도 이번에는 한참 다시 나갈 일 없을 테니 완전 과하다 싶게 환영을 해주고픈 마음은 있었는데,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엄마라 플랭카드 하나 꽃다발 하나 준비할 생각을 못 했다. 급한 대로 핸드폰에 어플이라도 깔아서 흔들어볼까 하다가 말고, 게이트에서 하린이 나오는 장면을 건이 아이폰으로 촬영한 것으로 만족. 나중에 영상을 재생해 보니 문자 그대로 내 입이 계속 찢어져 있다. 이런 표정이 되는구나…새삼 놀라움.

도착 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눈여겨 봐 둔 한식당이 있었지만, 뭐 먹고 싶냐는 질문에 하린이 의외로 얼마 망설이지도 않고 짜장면이라 하길래 냉큼 중식당으로.

자주 카톡과 페탐을 해서인가, 엄청 반가운 한편 그닥 오랜만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푹 자고 와서 그런가 얼굴도 좋아 보였고.

이제 내주에 제주에서 만날 날을 또 고대한다. 매일 매일 재미있는 상상을 잔뜩 하는 어린 마음이 돋아나서, 참 좋다. 고마운 내 사랑들.

수요일

한 주에 4일만 일한다면 나는 수요일과 금요일 가운데 어느날을 쉰다고 하면 좋을까, 현실성이 1도 없는 공상을 할 때가 있다.

2박3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간다거나 특별한 활동을 한다면 모를까,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는 수요일에 쉬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 -_-;; 수요일의 졸린 오후다.

요즘은 월, 화에 라이프를 보느라 (왜아직도 본방사수를 놓지 못하니 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이 드는 바람에 수요일이 더욱 힘들어진 것 같기도. 이 짓도 내주면 끝난다. -_ㅠ

라이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새삼 우리 두나 배 님의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또 자연스럽고 얼마나 작가님의 대사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물흐르는 듯한 연기였는지 요즘 매번 느끼고 있다. 비숲 때는 작가님 대 연기자의 비중을 굳이 따진다고 하면 작가님 비중을 70으로 생각했으나, 같은 작가가 쓴 라이프를 보면서…으음 아니구나 그 비중은 50이 될까 말까구나, 생각이 좀 바뀌었다. 연출은 엄…문외한인 눈에도 비숲 때만 못하고 이번 라이프 연출 전반적으로 다 마음에 안 든다는 말만 해두자.

돌이켜보면 비숲 때도 영은수 대 황시목 럽라나 이창준 대 이창준 부인의 럽라도 참으로 모랄까 어설프면서도 과하게 레트로 감성이라 전체 극 흐름에서 많이 튀었는데, 눈치를 못 채거나 그냥 넘어가거나 했다. 왜? 두나 배가 잘했으니까! 현재 극중 이노을 슨상님 같은 역할을 두나 배도 조승우의 조연으로 했던 것인데, 그러니까 캐릭의 쓰임새는 거의 비슷한데, 두나 배가 잘해서 그냥 지금처럼 욕을 안 먹은 것이라는 결론. 노을 슨상님이 왜때무네 저렇게 일은 안하고 엘베 타고 사장님 병원 구경이나 시켜주고 아무 때나 끼어들고 조언하는지, 노을 슨상님 개인의 서사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다들 머리카락을 쥐어뜯지만…생각해보라. 우리의 한여진 형사님 역시, 참으로 일상에서 보기 힘든 정의 + 열혈 + 패셔니스타(^^) + 유능 + 세상 건전한 이상주의자에, 개인적인 서사는 1도 안 나온(나름 아픈 사연 구구절절 이런 거 하나도 없이 깨끗한?)  캐릭이었단 말이다. 그런 한형사님이 황시목을 워찌 그리 잘 인도하고 이해하는지, 대체 무슨 연유로 그렇게 잘해주는지, 사실 비숲에서도 그리 비중있게 다뤄주지는 않았어….지금의 노을 슨상님도 작가님은 그냥 그렇게 쓰고 있을 뿐이다(그래서 왜 여성만 그렇게 입체감 없게 캐릭 만드냐는 비판도 있는 걸로 안다만…글쎄 그게 여성이어서 그런 건지, 그냥 어쩌다 보니 두 번 다 그리 된 건지, 나는 판단 보류). 그런데도 이렇게 욕을 먹다니;;; 노을 슨상님께는 참 안됐지만 이거슨 연기력의 차이로 빚어진 결과랄 밖에. 또한 드라마란 얼마나 많은 요소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야만 되는 세계인가, 좀 과장하면 우주가 도와야만 되는구나, 뭐 그런 생각도 해가면서, 허겁지겁 끝을 향해 질주하는 이 애증의 드라마를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작가님 근데 다른 건 몰라도 장애가 있는 예선우를 그리는 시선의 불편함, 이 부분 만큼은 반드시 피드백 제대로 받고 다음 작업 시 깊게 고민하셔야 할 듯.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아주 균형잡히고 날카로운 시각을 뽐내셨는데 인권 쪽으로는 좀 애매한 부분 확실히 있어서 팬으로서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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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주 건과 나는 토요일이면 일단은 영구 귀국하는 하린을 맞이할 생각에 좀 들떠 있다. 이번에는 잠시 들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살러 돌아오는 것이고, 당분간은 우리집에서 친구와 함께 지낼 계획이라 공항에 마중을 간다, 4인용 식탁에 맞출 의자 및 기타 생활용품을 산다 (아아, 제주는 가구 사기에는 정말 최악인 곳이다 ㅠㅠ 뭐 하나 맘대로 되는 게 없는 가운데 그나마 이케아 온라인 스토어가 우릴 살렸다), 유리창 청소를 한다 (지난 주에 이거 하느라 장장 네 시간 걸림, 내 다시는 걸레로 닦을 생각을 하지 않으리, 환경 생각하면 길티 … 우리 주제에는 일회용 밖에 답이 읎다는 현실을 인정하자), 몇 달 내 이사할 집을 어느 정도 급으로 구할지 홀쭉한 통장에 빚을 얼마나 얹을지 궁리해본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준비할 것들이 소소하게 줄을 서 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번거로운 마음은 하나도 없고 그저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

하린이 어제 에딘버러에서 추억밟기 한다며 보내온 사진. 사전 답사 한 번 없이 2010년 처음 혼자서 발을 디뎠던 스코틀랜드 자그마한 학교. 졸업 이후 몇 해 만에 모처럼 선생님들도 만나고 공부했던 교실도 돌아보며 감회가 새로웠던 모양이다. 제 할머니를 닮아서 이런 아기자기한 낭만을 갖추었다 싶어서 베시시 웃음이 난다. 아유 할머니이이 그만 좀 해에에에 라며 귀찮아 하더니 영락없이 그 피가 흘러가지고 말이야. ㅎㅎㅎ

모쪼록 마무리 잘하고 건강하게 귀국하기를 고대하며, 아이처럼 한 밤 한 밤 손가락 꼽고 기다리는 날들이다.

 

술 기록

지난 주말에는 술을 많이 마셨다.

밤을 꼬박 새워 마시고 동틀녘에 해장국을 먹은 다음 까무룩 낮잠을 자고나서 저녁 어스름 깔리면 또 다시 시작하던 날들(음….아마도 한 십여 년 전까지만 가능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당탕탕 부어라 마셔라 약간 그런 느낌이 날 만큼 마셔서, 근래 들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술자리가 되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술자리를 즐기는 편이고 술 자체도 좋아라 하는 편인 것은 동일한데, 완전히 라고 할 만큼 달라진 점이 있다 – 이제는 비싼 술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ㅠ 물론 소주나 막걸리도 가끔 맛있지만, 정말 가끔이고 안주가 맞아떨어질 때만 맛있게 마신다는 점에서, 이거 참 큰일이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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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무엇에나 큰 기대는 금물, 신조가 있기는 해도 프렌치터틀에 기대를 안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제껏 권해주신 와인 가운데 별로인 와인이 없었고 최고다! 하는 와인은 여럿. 이날도 기대 만땅이었고 결과는 따따봉.

마신 순서대로 첫 번째 와인인 저것은, 으음 이름 모른다. 그림으로나마 외워두고자 사진 기록. 일행은 이후 마신 것들에 비하면 약간 무난 + 평범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 와인의 훅 올라오는 신맛이 참 좋았어서 어쩌면 제일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걸어가는 동안 좀 습하고 더웠기에 청량하고 가벼운 맛이 더 확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네, 지금 돌이켜보니 이건 여름 와인이다.

함께한 까망베르 치즈와 참 잘 어울렸는데, 사장님이 너무 바쁘셔서 그 까망베르가 우리가 아는 그 까망베르인지 못 여쭸다. 그래도 아무 까망베르나 생기면 집에서 흉내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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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Syrah가 베스트였구나 싶어진다. 이렇게 어느 계절에 마셔도 좋을 맛을 내면서 일행 한 분이 그랬듯 난 좀 시라가 별로, 라는 사람까지도 매료시킬 정도의 레벨을 갖췄으니, 역시 가격이 좀 부담스럽긴 해도 다음에 가서 있으면 요걸 사올 듯.

늘 오리로 테린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날은 돼지 & 닭으로 한 테린이 나왔다. 시라와는 아주 잘 어울렸지만 나는 역시 테린처럼 꾹꾹 눌린(?) 음식을 별로 좋아라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느끼고. 하지만 같이 주시는 바게트가 맛있기 때문에, 테린을 약간 발라 한 쪽 먹고 그다음은 대부분 그냥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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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강려크 했던 와인. 도라벨라 도라버린다 해가며 낄낄 대며 마셨는데, 배려심 짱인 사장님이 요걸 마지막에 내주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초큼은 제 정신 아닐 때 마셔야 좋을 맛이랄까. 앞에 두 병을 마시고 마셨으니 훅 하고 들어오는 거칠고도 씁쓸한 훈제 향 비슷한 향이 거부감 없이 재미있게 여겨졌지 첫 병부터 마셨다면 어려웠을 듯.

이날은 가지 요리와 함께 먹었는데 다음에는 스테이크와 함께 하면 어떨까, 기대감을 남겨준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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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Y를 아일라 비슷하게 발음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위스키. 오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았는데, 영국에서 위스키 탐험도 안하고 모했나, 요즘은 살짝 후회가 된다.

일행과 왕좌의게임 이야기를 했어서 그런가, 지금 이 술을 떠올리니 왕겜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뭔가 야인의 맛이라는 느낌. Non chill-filtered를 찾아보니 공교롭게도 이것 또한 와인으로 치면 내추럴와인처럼 공장식 가공을 안했다는 의미였다.

이날은 모든 것이 내추럴 내추럴 했던 날인가 보다.

*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해주었던 1박2일의 미식(을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그렇게 된) 여행. 덕분에 좀 고단한 월요일이지만 모처럼 친구들이랑 질펀하게 놀아서 기부니가 나른하게 좋다.

 

 

1년이 지나고

두리 간 지 1년이 되는 오늘.

1년이란 시간이 짧지는 않은데도, 예상은 했지만 갈수록 더 아쉽고 그리울 뿐, 여전히 자주, 보고싶어 눈물 흘린다.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가끔은 잠깐이나마 잊기도 하고.

일상은 그렇게 흘러 간다.

하지만 아직도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두리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싫다.

1년 전 오늘 이후를 돌아보니 조금씩 감정이 다르긴 하다.

초반에는 못해준 것, 후회되는 점들이 많이 떠올라 속상했는데 지금은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는 편이다.

대신 초반에는 두리의 마지막 아픈 시절 사진도 잘 봐졌는데 이제는 마지막 일주일이랑 가던 날 모습은 아예 못 보겠다. 묻어준 곳 동영상도 초반 며칠 이후엔 아예 한 번도 다시 재생 못했다. 어쩌면 점점 더 두리를 다시는 못 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아직 두리를 마음 속에서부터 놓아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1년 밖에 안 지났어도 사회적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보다는 펫로스에 대한 인식이 훨씬 높아지고있고, 제주에서도 대형견의 장례를 치룰 장소가 곧 생길 것 같고, 나날이 나아지는 동물병원 서비스를 보면서…가끔 두리가 딱 일년만 더 버텼으면 좀 더 후회없는 마무리를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도 커진다.

그리고 매일의 생활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두리 밥 걱정, 아침 저녁 산책 걱정 없이 여행을 다니고 외식을 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고 해서 이런 점은 좋구나, 하게 되지 않는다. 두리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아무 데도 여행 못가고 몇 달 동안 외식 한 번 못해도, 우리는 정말 괜찮을 텐데.

두리를 위한, 두리에 의한, 두리가 전부인 생활, 그런 생활이 우리는 참 좋았고 그래서 제주에 살기를 참 잘했다 싶기도 했는데.

두리와 함께 지낼 때 두리로 인한 지출이 나름 상당했는데도 셋에서 둘이 된 요즘, 생활비는 거의 차이가 없다. 두리가 쓸데없는 소비 욕구를 많이 줄여준 셈이었구나, 새삼 고맙기도 하다. 이 돈이면 두리 간식 많이 사줄 수 있으니까 사지 말자, 했던 물건들을 지금은 팡팡 사댄다.

*

노견에게 폭염이란 너무나 가혹한 것일까,  이 더위에 그래도 잘 버텼구나 안도하던 것도 잠시, 고마운 찬 바람이 살랑이기 시작하던 며칠 전, 애정하는 지인의 노견 또치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우리 두리가 그랬듯이 가기 일주일 전부터 심하게 앓고 미련없이 가버렸다.

착하디 착한 우리 개들은 마지막까지도 보호자를 최소한도로만 힘들게 하고 깔끔하게 떠났다.

두리야, 또치야, 하늘에서 둘이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 언젠가 다 같이 만나자꾸나.

주말 기록

이런 폭염에는 차라리 나가 사먹는 편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토요일 점심 찾아본 식당은 이번에도 약간 실패. ‘비싸도 맛있는 쪽이,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은 별로인 쪽보다 낫다’는 평소의 지론만 굳건해지는 계기. 우리집에서 차로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시내 반대 방향이라 잘 가지지 않는 쪽이라, 모처럼 색다른 동네 구경은 잘했다. 미친 듯이 뻗쳐나가는 공사 현장 구경도 잘했고;; 이렇게 집들을 많이 짓는데도 그중 한 집도 구매할 엄두를 못 내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잠깐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말았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단 한 번이라도 세상이 합리적으로 굴러간 적이 있겠나. 그저 ‘빨간머리앤’의 멘토이신 다이아나 고모님 말씀대로 ‘후회없이 살면 그걸로 된 것’이다 (앤 이야기는 잠시 후 또 할 거다!). 잠깐 저 많은 집에 들어갈 사람이 있긴 할까 애써 지어만 놓고 공실 많아 망하는 거 아닌가… 하다가, 아유 내 주제에 무슨 빌딩 주인을 걱정하고 앉았냐 – 피식, 속으로 웃었고.

양식 코스 요리가 나오는 곳인데 둘이 합해 채 4만원이 안 나왔으니 과연 가성비가 높긴 하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서비스를 해서 앞 요리를 채 다 먹기도 전에 두번째 요리가 나왔고 후식조차 빨리 빨리 해치워야 하는 느낌. 게다가 이런 시골 소박한 서양요리 컨셉 식당에서 홍대 지하 바에나 있을 법한 (요즘도 있나는 몰겠지만) 커다란 스크린 롤을 벽에 걸고 보여주는 퓨전 클래식? 연주 영상이 왜 필요한지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의문….정신만 사나왔고요. 입구에는 쉐프님의 삐까번쩍한 경력이 열 줄 이상 적힌 보드가 있는데, 으음….굳이 적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하신 건 아닌가봉가.

건진 게 있다면 저 식기 트레이와 신식 후추 통? 우리집 식탁엔 담뱃재 흩날릴 때가 잦은 관계로 냅킨을 깔고 식기를 놓거나 그도 귀찮으면 그냥 놓고 먹었는데 이게 항상 좀 찝찝했다. 트레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좀 깔끔하지 싶어서, 조만간 하나 장만해야겠다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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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안 그래도 작은데 여름을 맞이해 한 칸을 냉동으로 바꿔 버리니 냉장 칸에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자취생 냉장고 수준이라) 장을 예전만큼 많이씩 못 보니까 자주 봐야 하는데, 주말이면 또 나가기 귀찮아져서 에라 모르겠다, 있는 재료를 털어 먹게 된다. 날이 더우니 빨리 쉴까 봐 두부 사놓고 2-3일 지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마침 김치도 알맞게 쉬어가고 냉동실에 찌개용 돼지고기도 있길래 언젠가 찜해둔 두부김치 황금레시피를 찾아 따라해보니, 우왕 +_+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이야. 건이 회사 워크샵 때 먹고 남은 참이슬이 아직 몇 병 있어서 오랜만에 한라산 아닌 소주. 으, 원래 이렇게 달았었나?

이외에는 달걀 샌드위치, 오이 샌드위치, 일본에서 사 온 1회용 토마토 수프, 토마토, 복숭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매콤한 비빔국수, 비엔나 소시지와 쌀밥 등등을 먹었다.

넷플릭스에서 ‘빨간머리앤’ 시리즈를 정주행 하느라 주말이면 뭐 하나라도 특별요리를 하고 싶어하는 나의 열정이 이번에는 거의 빛을 발하지 못해서 메뉴가 저렇다만, 대체로 맛있었고 만족도 높았음.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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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빨간머리앤을 책으로도 읽었겠지만(정확하지 않음;;) 기억에 또렷이 남는 건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이다. 만화를 잘 안 보던 나 같은 아이에게도 비쥬얼이랑 당시 주제곡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인기였으니.

원작을 꽤 많이 각색한 것으로 보이는 넷플릭스 시리즈(2017년 작)에서는 어릴 때 본 그 만화에서 참으로 기이한 캐릭터로 여겨졌던 마릴라와 매튜 캐릭터가 비로소 이해가능한 역할로 재탄생한다. 어린이 청소년 대상인 원작에서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통상적인 이성애 커플 부모가 아니라 남매가 앤을 입양하는 설정을 했는지 정확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그 당시 애니 제작진에서야 마릴라를 괴팍한 여자로 설정하고 매튜는 거의 바보스러운 남자로 설정하는 것 외에 별달리 수가 있었겠나 싶지만, 나로서는 당최 그둘의 캐릭이 묘하기만 하고 잘 공감되지 않아서 내내 찝찝했던 지점이라 이렇게 각색해주니 속이 다 시원하드라.

시즌 2는 1에 비해 다소 늘어지는 면은 있지만, 아무래도 약간, 아니 무척 비현실적으로 앤 주변 사람들이 선하게 그려지거나 갈등 상황이 너무 빠르게 봉합되기는 하지만, 그래서 극 중 애번리 마을의 어른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우리에게는 환타지로만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때 ‘이불 뒤집어쓰고 상상 속 인물로 분해서 혼자 생쇼하며 지어낸 대사 읊는 것’을 꽤나 즐긴 나로서는 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앤처럼 다른 아이들까지 끌어들여서 연극 씩이나 할 만큼의 적극성이나 외향성은 전혀, 라고 할 만큼 없었지만 혼자서는 참 많이 그러고 놀았다. 어른들이 집을 비울 때면 몇 시간이고 상상의 나래 속에서 일인 다역의 연기를 펼쳐가며 이야기를 제멋대로 지어내는 중에 혹여라도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가슴을 졸이느라 더욱 더 재미있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쑤욱, 앤을 통해 떠올랐는데, 새삼…나라는 사람의 이중성이 대단하다 싶기도. 데이드리밍이 일상이던 아이에서 이토록 현실적인 어른이 되다니. 아무려나, 누군가는 공상과학 환타지 물에서 힐링을 찾고, 나는 좋은 어른 환타지 물?에서 힐링을 하는 게 차이라면 차이지만, (너무 중독되어 땅바닥에 발을 못 붙일 정도로 매몰되지만 않는다면) 덕분에 주말 잘 놀고 잘 쉬었다 싶고 환타지 관람은 정신 건강 유지에 좋은 작용을 하는구나 싶다.

더불어, 드라마를 보면서 현 시대의 주요 이슈를 어떻게 녹여냈는지, 그걸 또 얼마나 ‘잘’ 공들여 만들었는지를 보는 재미 또한 결코 작지 않은 재미. 아쉽게도 한드에서 거의 못 보는 재미라서 (하지만 우리에겐 ‘라이프’가 있다! 오늘 부디 지난 5, 6화를 만회해주길 ㅠ), 이런 시리즈 보면 참 대단하다 싶고 그들의 작업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관련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순히 서프라제트를 위시한 당대 페미니즘 현상만 넣은 게 아니라 ‘대의로는 진보적이나 자기 자식에게는 여전히 편견 가득한 백인 중산층 우월주의’를 품고 있는 ‘지식인 여성’상을 보여준 부분. 그녀가 마릴라와 나눈 대사가 압권이다. 마릴라 머시써…ㅠㅠ

이래저래,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재미있다고 누군가 추천해서 받아보면 막상 시들해서 1, 2화 보고 말곤 했는데 이번 만큼은 눈물 줄줄 흘리며 밥 먹는 시간 빼고 온 주말을 할애, 어젯밤 늦게까지 봤는데도 아직 다는 못 봤다. 그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너무 졸림…z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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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행지에서의 하린. 우리집도 부엌 창이 저렇게 넓고 마당에서 보이면 참 좋겠다.

주말 사이 런던으로 돌아간 하린. 조금만 기다리면 실제 만난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건강히.